딸과 함께 다녀온 독일 여행 29.-녹색 지붕의 베를린 돔.
2017.8.23. 수.
루스트 정원의 오른편에 서 있는 웅장한 베를린 돔은 베를린에서 가장 큰 교회로
베를린 대성당으로 불리지만 현재는 개신교회로 처음에는 1465년에 지어졌다.
1905년 슁켈에 의해 바로크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축.
2차 세계대전시 파괴된 것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하였다.
내관과 외관이 화려하며 호엔촐레른 왕가의 교회로 지하에 왕가의 무덤이 있다.
돔의 높이는 114미터이며, 270개의 계단을 오르면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7000개가 넘는 파이프로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은 독일 최대의 규모이며
이 오르간으로 정기적으로 연주회가 열린다고 하였는데 그 소리가 기대가 되었다.
우리가 교회에 들어간 시간은 마침 예배가 시작되는 시간이어서 운 좋게도
입당송으로 연주되는 오르간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장엄하고 거룩하게 들렸다.
개신교 신자가 아니어서 예배를 보는게 지루하고 또 갈 곳이 많아 예배 도중 나왔다.
옆의 문으로 들어가니 전망대를 오를수 있다고 하였는데 시간이 없어 포기하였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통일 전 동서 분단의 상징이었으며 베를린을 대표하는 역사적 건축물.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명으로 칼 고트하르트 랑한스가 설계하여
높이 26미터, 가로 길이 65,5미터에 달하는 고전주의 최고의 건축물로 인정받는다.
1791년에 완성된 이 문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의 정문 프로필라에를 본 떠 만들었다.
맨 위의 조각상은 네 마리의 말을 이끄는 여신상으로 오한 고트프리트 사도의 작품
'승리의 콰드리가'(1793년)로 본래는 평화를 상징히는 조각이었으나 19세기 초
나폴레옹에게 빼앗겼던 것을 되찾아 옴으로써 승리의 여신상이 되었다고 하였다.
2차 세계 대전시 폭격을 받았으나 이 여신상은 파괴되지 않고 살아 남았다고 한다.
우리가 이곳을 찾았을 시각은 이미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역광이라 독일 통일의
상징 승리의 여신상과 늠름한 모습의 문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아직 분단의 상태인 우리에게는 자유롭게 그 문을 통과하는 그들이 몹시 부러웠다.
넓은 광장의 많은 관광객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모여 드는걸까? 궁금하였다.
어느새 땅거미가 내리는 루스트 정원.
베를린 돔의 입구에 세워진 조가상들.
돔의 천장.
7천개가 넘는 파이프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은 독일 최대의 규모.
중앙 제단.
아ㅡㅁ다운 성화가 그려진 둥근 천장.
곧 예배가 시작될 거라고 하였다.
정기적으로 연주회가 열린다고 한 파이프 오르간.
황금빛의 둥근 천장.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천장에 압도되었다.
곧 연주가 시작되고.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성가에 내 마음도 엄숙해졌다.
성화가 있는 제단.
기둥이 그리스 신전같았다.
오른쪽 문으로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갈 곳이 많아 전망대는 오르지 않고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브란덴부르크문으로 가는 길.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빛이 반사되어 사진도 제대로 찍혀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듯 하였다.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경찰들.
광장 주변의 건물.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의 정문을 모델로 하여 만든 문.
위의 조각상은 네 마리의 말을 이끄는 여신상 '승리의 콰드리가'
광장에 모여 든 사람들.
19세기 초에 나폴레옹이 파리로 가져 간 것을 되찾아 와 승리의 여신상이 되었다고 한다.
문의 뒤에서 본 모습.
문의 뒤에서 인증 사진.
국회 의사당으로 가는 길.
길에서 사 먹은 우리의 소박한 저녁.
길거리 음식이지만 맛있다고 입소문 난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