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발칸 9국 여행기
푸른비3
2017. 8. 8. 06:10
여행일자:2017.5.7~5, 19.
여행한 나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 네그로.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일상생활에 지친 우리는 삶의 위로가 필요할 때 모든 걸 뒤로 미루고 떠나고 싶다.
나이 들수록 이곳 저곳 아프기 시작하고 변화없는 생활이 권태로운 지난 늦겨울,
친구로 부터 발칸 반도로 여행을 가자는 전화를 받고는 길게 생각지도 않고 승락하였다.
책이나 TV로 본 발칸 반도는 언젠가 꼭 가고 싶은 여행지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여행 일정이 잡혀진 후 나는 도서관에서 발칸 반도에 관한 책을 몇 권 빌려왔다.
유럽 동남부에 위치한 발칸 반도는 발칸 산맥에서 유래한다고 하였다.
발칸이란 이름은 터키어로 산맥을 뜻하며 디나르알프스 산맥, 로도피 산맥,
스타라플라리나 산맥으로 이루어지며 총 면적 78만 800평방 킬로미터에 달한다.
발칸산맥 북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다뉴브 강 저지대와 연결을 이루며,
남쪽은 복잡한 여러개의 산줄기가 아드리아해를 따라 그리스와 연결되어 있다.
발칸반도 사이를 다뉴브 강, 모라바 강, 바르다르 강, 마리차 강이 흐른다.
다뉴브 강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수송 항로이며 공업용수, 농업용수를 제공한다.
산악 지대가 많은 내륙은 대륙성 기후이며 해안 지방은 지중해성 기후를 띤다.
또한 발칸 반도는 유럽과 아시아의 통로 한가운데 위치하여 유럽, 러시아, 아시아 등
끊임없이 외부 세력의 지배를 받아왔으며 정치적으로 가장 불안한 지역에 속한다.
기원전 15세기부터 시작된 복잡한 그들의 역사와 서로마 지역의 영향을 받은 가톨릭,
동로마 제국의 영향의 정교회,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교 등 대충 공부하였으나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억력으로 거의 무지 상태로 발칸으로 떠날 날이 다가왔다.
이번 여행은 국적기가 아닌 아랍 에미리히트의 에티하드 항공기를 이용하였으므로
중동의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한 나절 관광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지기도 하였다.
아부다비에서 출항한 비행기는 이탈리아의 베니스 공항에 도착하였고,
공항에 마중나온 버스를 환승하여 육로로 슬로베니아에 입국하였는데,
입국신고를 하지 않고도 통과를 하여 발칸 반도에 들어서는 것도 몰랐다.
베니스에서 슬로베니아 블레드까지의 5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였지만,
창밖의 푸른 들판이 펼쳐진 목가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지루한 줄 몰랐다.
블레드는 디나르알프스산맥의 서쪽에 위치한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었다.
만년설이 녹아내린 블레드 호수에는 동화속의 풍경같은 성모승천 성당이 있는
작은 섬이 있었는데, 플레트나 목선을 타고 가면서 하얀 설산이 물속에 잠긴
맑은 호수와 주변 산책로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연방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다.
호수를 바라보는 절벽위의 블레드 성은 그대로 한 장의 그림엽서 같았다.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성을 관광한 후 곧장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이동하였는데
넓은 평원에 방목하는 양떼들이 풀을 뜯는 모습이 슬로베니아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초록빛 밀밭과 노오란 유채꽃이 끝없이 펼쳐진 들판은 그대로 돌돌 구르고 싶었다.
수도 자그레브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건물과 가로수 나무가 조화로웠고,
파란 빛깔의 트램이 지나가는 시내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로워 보였다.
자그레브에 도착하기 바쁘게 환전소에서 쿠나로 환전하여 (1유로= 7쿠나)
구시가지 투어를 나셨는데, 성 마르크 광장의 성모 승천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자그레브 대성당 앞의 황금빛 성모상과 수호 성인의 조각상이 눈에 들어왔다.
대지진으로 서로 높이가 달라진 쌍둥이 첨탑은 지금도 보수 공사중이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자그레브의 숲과 붉은 기와 지붕은 그대로 그림이었다.
자그레브에서 4시간을 이동하여 아드리아 해변 도시 자다르로 향하였는데,
육지와 나란히 열도가 이어진 모습은 해변길이 아닌 강변길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그곳이 바로 얼룩무늬 달마티아 개로 잘 알려진 달마티안 지방이라고 하였다.
고대 로마인들이 세운 자다르에는 크로아티아 최초의 대학인 자다르 대학이 있었다.
'바다의 오르간'작품근처의 파도가 치는 오르간소리에 귀기울여 보고,
햇빛에 반짝이는 '태양을 향한 인사' 조형물위에서 아이들과 놀았다.
점심 식사후 자다르에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아드리안 해안의 고대 도시 스플릿.
로마 황제 디오크레티아누스에 의해 건설된 아름다운 휴양도시로 문화의 중심지였다.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여생의 보낸 궁전은 높이 25미터의 성벽과 16개의 탑이 있었으며
대성당 입구의 계단위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검은 대리석 스핑크스가 엎드려 있었다.
둥근 기둥의 열주가 늘여선 광장은 마치 로마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였다.
궁전에는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북쪽문으로 나가니 이곳의 수호성인인
그레고리 닌스키 주교상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손길로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나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주교의 발가락을 만지며 마음속의 소망을 빌었다.
황제의 알현실은 천장이 동그랗게 열려 있어 공명이 좋아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거리의 악사 연주를 들으며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핥으면서 맑은 햇빛을 즐겼다.
스플릿에서 다시 4시간을 달려 메주고리에로 가는 길에는 석회암 바위산이 이어졌다.
하얀 석회암 사이로 짙은 초록의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는 모습이 특이하게 보였다.
6명의 어린이에게 눈부신 빛으로 발현한 성모님은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투숙한 호텔위로 환하게 떠오른 달을 보니 어찌나 반가운지 손을 흔들었다.
성모님이 발현한 산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힘들었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올랐다.
모스타르는 헤르체고비나의 네레트바 강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
담배, 섬유, 목재가공의 산업이 발달하였으며 보크사이트 채굴의 중심지였다.
동방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계와 이슬람 교를 믿는 보스니아 무슬림,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의 종교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복잡한 지역으로 중세의 건축물이 많았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고색창연한 중세의 도시로 들어가는 듯 하였다.
거리의 상점들은 이제 막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네레트바 강위의
이슬람식 카페에는 손님이 탁자위의 물담배를 마시고 있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강가로 내려가니 옥색의 물위에 세워진 아취형의 하얀 다리가 눈에 들어왔는데,
가톨릭 문화와 이슬람 문화를 연결해주는 스타리 모스트(오래된 다리 라는 뜻)였다.
숱한 이야기가 담긴 다리를 건너 무슬림 마을로 들어가 터키풍의 조그만 종을 하나 샀다.
오렌지와 올리브 나뭇잎이 햇빛에 반짝이는 평원을 달려 크로아티아에 입국하였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는 돌출된 암반위에 7세기에 형성된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
유럽 최초로 노예제도를 폐지한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춘 지성의 도시라고 하였다.
여러 차례 지진과 내전으로 파괴되었지만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시로 지정된 곳이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노래할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유럽의 성벽 중 가장 보존상태가 좋다는 성안에는 오노프리노 분수, 스폰자 궁, 렉터 궁전,
성 블라이세 성당, 성모승천 성당 등 역사적인 장소가 많았으며, 햇빛을 즐기는 관광객,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 오랜 세월동안 발길에 닿아 반들반들해진 골목길,
아기자기한 상품이 진열된 기념품 가게 등 눈길 멈추는 곳 모두가 아름다웠다.
성벽을 걸으면서 내려다 본 성안의 낡은 붉은 지붕들은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다.
스르지산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아드리아해의 물빛은 눈이 시릴 정도의 파랬다.
성안에 옹기종기 이마를 맞댄 붉은 기와 지붕들은 블록으로 만든 장난감 도시 같았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전망대에서 보았던 꿈꾸는 듯 한 로크섬도 한 바퀴 돌았다.
라파엘의 '의자 위의 마돈나' 티치아노의 '성모승천' 그림이 있다는 대성당을 구경하고
시간에 쫒겨 알록달록 예쁜 기념품 가게는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그곳을 떠나왔다.
이탈리아어로 검은 산이라는 뜻의 몬테 네그로에 도착하였을 적에는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 무렵이라 주변의 하얀 석회암 산들이 거므스름하게보였다.
이곳은 비교적 물가가 싼 곳이라 유럽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와
며칠씩 쉬어가는 곳이라 하였는데 우리가 머문 호텔 앞에도 전용으로 사용하는
해수 풀장이 있었지만, 우리는 발만 담그고는 떠나야 했기에 아쉬운 곳이었다.
몬테 네그로의 조그만 어촌 마을인 페라스트에는 두 개의 섬이 있었는데
성 조지섬은 베네딕토 수도원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돌로 만든 인공섬이 있었다.
여러가지 슬픈 전설이 전해오는 성모 승천 성당안에는 박물관이 있었는데
민예품과 그림들 속에 유난히 눈길을 끄는 성모자상은 바다로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수를 놓았다는 애절한 사연의 아내가 만든 작품도 있었다.
몬테 네그로의 코토르 성은 로브첸 석회암 산에 세워진 성으로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
해안에 커다란 빌딩 같은 대형 크루즈 선이 들어와 광장은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오랜 기간 베네치아 공국의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우아한 역사적인 건물들이 많았다.
마을뒤로 산길을 따라 요새로 오르는 길은 수많은 야생화가 피어 천상의 화원같았다.
하늘 높이 치솟은 씨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바라본 코토르 항은 카렌다속의 사진이었다.
오랜 시간 독재자 엔버 호자의 고립 정책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알바니아로 향하였다..
수도 티라나는 주요 건물들이 있는 스텐베르크 광장은 공사로 주차를 할 공간도 없었다.
어둠이 내리는 이슬람 사원이 있는 거리에는 퇴근을 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퇴근후 친구와 정담을 나누는 모습, 애완견과 걷는 모습, 가족과 함께 산책을 나온 모습 등.
일상생활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가난과는 상관없이 모두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티라나의 호텔에서 1박을 한 후 마케도니아로 향하는 들판에는 드문드문 붉은 양귀비꽃이 피어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출생지인 마케도니아의 수도는 스코페이며, 전체 인구가 200만 명의 작은 나라였다.
'깍아지른 바위 위' 라는 뜻의 오흐리드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던 곳으로 '빛나는 도시'라고 불리었다.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과 최초의 슬라브 대학의 유적이 있는 이곳에는 성 요한 카네오 성당이 있었는데
호수위 벼랑위에 세워진 마케도니아 정교회의 이 교회는 영화 '비 포 더 레인'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수도 스코페의 신시가지 광장의 수많은 조형물 중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이 가장 눈에 띄였다.
구시가지와 연결되는 터키식 돌다리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아흐메드 2세가 건립하였다고 하였다.
구시가지의 동방시장은 일찍 문을 닫아 진귀한 물건들을 구경할 수 없었지만, 오래된 터키 목욕탕과
이슬람 사원을 구경할 수 있었고, 바람이 살랑이는 언덕위의 요새에서 티라나 시내를 조망할 수 있었다.
허물어진 칼레 요새를 보고 내려 오면서 인간의 흥망성쇠를 되돌아보면서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다.
스코페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우리에게 장미와 장수식품 불가리스로 알려진 불가리아로 향하였다.
불가리아는 북부의 평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2925m의 무살라 산이 있다.
수도 소피아에서 120Km 떨어진 릴라 사원은 릴라 산맥의 깊은 산림속에 위치한 동방 정교 수도회였다.
5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서도 불가리아의 문화를 지켜온 정신적 고향이라고 하였다.
불가리아 정교회의 총 본산이기도 한 이 사원은 10세기경 수도승 이반 릴스키가 세운 수도원이다.
푸른 숲이 울창한 깊은 산속에 이슬람 영향의 줄무늬의 사원이 있다는 게 신비스러웠다,
이반 수도승의 유해가 모셔진 중심 사원에는 천장까지 빈틈없이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었다.
성경속의 내용을 표현 한 그림과 함께 입구에 그려진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당시 글자를 모르는 일반 신도들을 위하여 이렇게 그림으로 천구과 지옥을 비교하여 그려 놓은 듯,
사살에 묶혀 지옥으로 끌려가는 여인들을 보면서 나 자신은 어떤가 되돌아 보며 쓴 웃음을 지웠다.
소피아는 불가리아의 수도로 로마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딸 소피아를 수호성인으로 모셨다.
독립광장에 높이 24m 우뚝 솟은 소피아의 동상은 검은 옷에 황금빛 얼굴과 손을 가진 여인이었는데,
승리를 상장하는 월계관과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를 들고 소피아의 거리를 내려다 보고 서 있었다.
광장 근처에는 과거 터키식 공중 목욕탕이었다는 박물관앞에는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분수가 있었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바냐바시 모스크도 있었는데 둥근 돔형의 지붕과 첨탑이 아름다웠다.
지하도 공사를 하다 우연히 발굴된 로마의 고대 도시 세르디카의 유물과 유적들이 지하철 역사안에
전시되어 있는 것도 이채로웠고, 오스만 제국의 탄압을 피해 지은 성 페트카 지하사원도 있었다.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희생된 러시아 병사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알렉산드로 네프스키 성당은
황금 돔과 12개의 종탑을 가진 불가리아 최고의 정교회였는데, 친구가 내게 내민 초에 불을 밝혀
촛대에 꽂으며 이 먼 나라의 아름다운 성당에 나를 불려 주신 하느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하였다.
불가리아의 벨리코 투르노보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로 얀트라 강위에 차라베츠 요새가 있었다.
야생화가 피어있는 성벽을 따라 공예품을 파는 할머니는 한국말로 "정말 예쁘다" 하며 사라고 하였다.
요새안의 성모 승천 성당에는 불가리아 최초의 현대화라고 하는 프레스코화가 가득 그려져 있었다.
불가리아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진 그림앞에서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강위로 아치형의 다리가 있는 붉은 지붕의 마을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 눈속에 가득 담고 내려왔다.
국토의 1/3이 카르파티아 산맥속에 위치한 루마니아는 스스로 로마인의 후예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집시와 드라큘라 성, 체조요정 코마네치로 알려진 루마니아는 남한보다 북한과 더 가까웠던 나라였다.
'기쁨이 샘솟는 곳' 이라는 뜻의 수도 부카레스트는 중세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았다.
악명 높은 차우셰쿠스 집권 이전에는 '발칸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였다고 하였다.
카를 대왕의 동상이 있는 광장에는 대학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 세련된 유럽풍의 건물이 많았다.
북한의 김일성 궁전을 모델로 하여 만든 '인민의 궁전'은 차우세스쿠가 1983년 착공을 하여 만들었다.
지금은 의회 사무실로 사용되는 이 궁전을 건설하기 위해 역사적인 많은 건축물을 파괴했다고 한다.
정면 길이 270m, 높이 84 m, 지하 92 m 로 방의 개수 1600개, 단일 건물 중 미국의 펜타곤 다음으로
세계 2번째로 큰 이 궁전의 완성도 보지 못하고 차우셰스쿠는 1989년 12월, 인민들에 의해 처형되었다.
햇빛에 영롱이며 부서지는 분수의 물방울을 보며 통일광장을 걸어나오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카르파니아 산속의 휴양도시 시나이아의 펠레쉬 성은 초대 국왕 카를 1세의 여름 별궁이라고 하였다.
유럽 최초로 전기를 사용하였으며 중앙난방을 처음 도용한 이 궁전은 60개의 침실과 30 개의 욕실,
집무실, 서재, 음악당, 식당, 알현실 등 160개의 방이 있으며 동 서양의 무기를 진열한 무기실과
진기한 보물 전시실, 무하, 클림턴, 루벤스 등 당시의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된 방도 있었다.
화려한 성을 보고 나오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주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구나... 씁쓸하였다.
드라큘라 성으로 알려진 브란 성은 1212년 브란 마을을 바라보는 암벽위에 세워진 목재 성으로,
입구에 들어서자 붉은 튤립이 핀 정원과 아담한 연못이 있어 흡혈귀 드라큘라와는 먼 이미지였다.
소설가 브람 스토커에 의해 쓰여진 드라큘라의 실제 인물 블라드 체페슈는 왈라키아 공국의 왕자로
오스만 제국에 볼모로 잡혀가 당하였던 원한을 훗날 포로들에게 잔인하게 복수를 하였다고 하였다.
검은 박쥐가 펄럭이며 나무 계단이 삐꺽이는 음침한 소설속의 궁을 상상을 완전 바꿔야만 하였다.
트란바실리아의 주도인 '산사자 나무'라는 뜻의 시비우는 독일계 이민들이 14세기에 세운 도시다.
광장 주변의 고색창연한 건물들 지붕의 덧창들이 째려보는 눈같기도 하고 졸리는 눈 같기도 하였다.
계단 아래의 다운 타운으로 내려가 이제 막 아침을 맞이하는 오래된 골목을 정겹게 걸어보았다.
거짓말 쟁이 다리를 건너 시의회, 미술관, 박물관이 있는 광장은 재즈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광장의 예쁜 꽃으로 꾸며진 노천 카페에서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여유를 누리기도 하였다.
마지막 여행지인 세르비아의 입국은 여지껏 다녔던 발칸의 여러나라 중 가장 까다롭고 힘들었다.
루마니아와 세르비아의 관계가 복잡한지 아니면 세르비아가 우낙 입국이 어려운 곳이지 모르겠다.
여러 번의 출국 심사와 입국 심사를 거쳐 드디어 수도 베오그라드(백색의 도시)에 도착하였다.
보스니아 내전 등 어두운 상처가 깃든 도시는 무언가 잿빛 분위기일 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고색창연한 우아한 건물과 숲이 잘 어우러져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느낌이 드는 세련된 도시였다.
지난 밤 이번 여행을 함께 한 일행들과 함께 마지막 밤을 조촐하게 와인 파티를 하였다.
이번 우리의 일행이 모두 30명이 넘는 인원이어서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모두 성품이 좋은 사람들이고 서로 배려하는 사람들이라서 얼굴 붉히는 일없이 마무리하였다.
아침 일찍 눈을 뜨니 창으로 하현달이 떠 있고 사방은 아직 푸른빛으로 잠들어 있었다.
마지막 날이 아쉬워 밖으로 나갔더니 전깃줄에 새들이 줄을 지어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도 이른 아침을 먹고 곧장 동 로마제국시대에 건설된 케레메그단 요새로 관광을 나섰다.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흔적이 남은 요새는 이제 공원으로 조성하여 기민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사바 강과 도나우 강이 합류되는 지점을 바라보며 요새안을 돌고는 공화국광장으로 걸어갔다.
세련된 차림의 시민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과 세계 명품가게가 들어선 상점도 구경하였다.
거리의 양옆으로 예쁜 카페와 기념품 가게, 화사한 꽃으로 장식된 예술인의 거리도 걸어 보았다.
베오그라드를 아쉬운 마음으로 관광하고는 곧장 니콜라 테슬라 공항으로 향하였다.
우리가 세계사를 배울 무렵에는 유고슬라비아 라는 연합된 나라들이 러시아의 붕괴로
각각 독립된 나라를 건설하였기에 아직은 나라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발칸 반도의 나라들을
이렇게 짧은 일정으로 후딱 스치고 떠나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여유로운 일정으로 박물관, 미술관도 순례하고 연주회도 들으면서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김찬삼의 <세계여행 전집 >10권을 읽으면서 세계 여행을 꿈꾸었던 단발머리 어린 소녀는
이제 희끗희끗 흰머리 중 늙은이로 변하였지만, 걸을 수 있을때 더 많은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여행을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지구촌 구석구석을 다녀보고 싶다.
여행은 미지의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가슴 설레임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행을 통하여 내 주변을 더 돌아보게 하고 나지신을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