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그믐달을 바라보며

푸른비3 2017. 1. 24. 11:35

 

눈을 뜨니 밤새 틀어놓은 보일러로 바닥이 따끈따끈하다.

올 겨울 들어 가장 한파가 심하다고 하여 기름값 걱정은 덮어버렸다. 

바닥이 뜨끈하면 가진 것 없어도 큰 부자가 된 듯 여유롭다.

베란다에 나갔다가 얼핏 아파트 앞동의 귀퉁이에 걸린 그믐달을 보았다.

 

아파트 화단은 엊그제 내린 눈이 녹지 않아 하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검푸른 하늘을 등지고 양쪽 모서리를 높이 치켜 세운

그믐달을 보는 순간 흡~! 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투명한 거울처럼 차가운 공기속에 찬연히 빛나는 그 달빛.

 

베란다 통유리를 밀치고 손을 내밀어 흔들어 보았다.

쨍하고 스며드는 새벽 찬 공기에 정신이 투명해졌다.

얼굴을 스치는 새벽공기는 차갑지만 상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설날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 올랐다.

 

군걸질거리 변변히 없던 어린 시절이지만,  

설날을 앞 둔 섣달 그믐 무렵은 뒤주간이 풍성하였다.

떡국이 꾸덕꾸덕 말라가고,  엿물로 만든 강정이며

화덕을 놓고 검은 모래에 튀긴 유과가 가득하였다.

 

어머니는 우리가 잠든 시간을 이용하여 새벽 일찍 일어나

떡국을 써시는데, 그런날이면 오히려 눈이 일찍 떨어진 우리는

내복차림의 우리 남매들은 옹기종기 어머니가 떡국을 써는

도마곁에 바짝 붙어 떡국모서리를 서로 먹겠다고 다투었다.

 

아버지는 어린 남매들이 추울까봐 새벽 일찍 아궁이 재를 치우고

군불을 지펴셨고,  어머니는 더운물을 떠서 세숫대야에 부어 주셨다.

세수를 하고 문고리를 잡으면 손가락에 떠억 붙던 쇠문고리의 그 촉감.

보온이 잘 된 아파트에서 사는 요즘 우리 아이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믐날이 가까우면 어머니는 우리에게 검게 그을은 장롱의 장석과

뒤주속에 넣어 두어 거뭇거뭇하게 변한 놋그릇을 닦게 하셨다.

기왓장을 뿌셔 만든 가루를 짚푸라기에 묻혀 힘껏 문지르면

반짝반짝 윤이 나던 녹그릇 닦기가 그 때는 왜 그리 싫었을까?

 

하얗게 튀긴 쌀알에 설설 끓는 엿물을 부어 다듬이로 밀어 강정을 만들고,  

검은 기름 모래에서 마치 신기루처럼 부풀어 오르던 유과를 만들고,

삼베 주머니를 꾸욱꾹 문질려 콩물을 받아 손두부를 만들던, 

하얀 앞치마와 수건을 두른 어머니의 모습이 문득 그믐달속에 그려졌다.

 

어린 시절 바람 숭숭 들어오던 문풍지 방 윗목에는 얼음이 얼었다. 

그 추위속에서 오소송 모여 그렇게 손꼽아 기다렸던 설날이

어른이 되면서 점점 귀찮은 통과의례처럼 여겼던 그 설날이

이제 노년의 문턱에 서서 다시 기다려짐은 왜일까?

 

영상으로 만 보았던 손자를 안을 수 있기 때문일까?

손자의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상상만 하여도 빙긋 미소가 떠 오른다.

명절은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모여 한 가족임을 확인하고,

흐르는 세월속에 하나의 매듭을 지을 수 있음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며칠 후 집으로 올 아들과 며느리는 어떤 마음으로 찾아올까?

며느리는 내가 새댁이었던 때와 같이 귀찮고 번거롭게 생각할까?

생활공간과 잠자리가 바꿔 불편해 할 며느리를 생각하며

오늘 아침 평소에 하지 않았던 장롱과 싱크대를 정리하였다.